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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틀란타 빛과 소금 한인교회

증언 (박은생 목사)

한 달 전에 존 마크 램지 하버드 교수의 "태평양 전쟁에서 매춘계약"이라는 논문에서 일본 정부가 조선 여성에게 매춘을 강요하지 않았고 위안부는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고용되었다고 주장을 하므로 미국 한인 사회가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1993년 일본정부도 위안부가 매춘 강요였다는 것을 "고도 담화"에서 인정했는데도 뒤늦게 이런 논문을 발표하므로 세계 학자들도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하바드 대학교에서는 존 마크 램지 교수의 논문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지만 학자로는 논문을 어떻게 쓰든지 자유이기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는 논문이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고 미쓰비시의 하바드 기부금으로 대학 교수가 되었다고는 하나 어떻게 학자의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그런 논문을 발표할 수 있을까! 어쩌겠나 그렇게 논문을 써는 것도 자기 자유이니까.


그래도 다행한 것은 위안부의 증인들이 아직 생존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위안부 증인들이 없다고 하면 세계는 존 마크 램지 교수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므로 – 그것도 하버드대학 교수의논문이니까 – 피해 여성들만 억울하다고 울부짖다가 역사 속에 묻혀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생존해 있는 위안부들은 그 사건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증인이란 말은 '목격자'란 말입니다. 만약에 한 명의 목격자가 자신들이 경험했던 고통스러웠던 그 사건을 증언을 한다고 하면 하버드 대학교수의 논문이 더 신뢰를 받을 런지 모르지만 일본의 위안부 사건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증인들이 있어서 존 마크 램지 교수의 논문에 대해서 그렇게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모독을 하고, 성경의 이야기들은 신화라고 할뿐 아니라 예수님이 마리아를 통해 아기까지 낳아다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반기독교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추측하여 만든 이야기들이 증인들, 목격자들의 증언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생각도 자유, 표현도 자유이기에 무슨 이야기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복음서는 증인들의 증언입니다. 예수님과 3 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직적 목격했던 사건들을 제자들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명의 제자들이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자가 예수님의 기적,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 죽은 자를 살리심, 물 위를 걸으심,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직접 목격했던 제자들이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목격자가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 것을 증언하는데 긴가 민가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어떤 사람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던 증인들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든 종교는 역사에 기초하지 않지만 기독교는 증인들의 증언이기 때문에 역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피의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기독교를 뭉개버리려고 얼마나 핍박이 심했는지 우리의 역사가 증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독교가 무너지지 않는 것은 증인들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증인들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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