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 애틀란타 빛과 소금 한인교회

새 역사 (박은생 목사)

6 월 6 일 중앙일보 근현대사 연구소장 배영대의 “새 역사는 자기반성부터”칼럼을 읽으면서 그동안 한국사회가 정권을 잡은 여당이 언제나 “과거사 바로잡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적을 내치는 광란을 바람을 일으켰다 사라지고 또 일으켰다 사라졌을 뿐 제대로 정리된 것이 별로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새 역사는 “나는 다 잘했고 너는 다 잘못했다”는 의식으로서는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왜냐하면 새 역사로 포장한 또 다른 잇속 챙기기 이벤트의 반복일 가능성의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한 역사가로서 그는 “과거사 바로잡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 말을 하는 사람부터 지나간 역사의 한 주체였음을 반성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반성 없이 새 역사는 시작되지 않는다. 남 탓 안하는 것이 새 역사의 출발이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크리스천 역사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과거사를 바로잡기”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내 탓이요’에서 시작해야 새 역사를 출발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세상도 새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고 하면 오늘날 교회가 새 역사를 출발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지난날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새 역사를 시작하려는 시점에 있습니다. 잘 못된 것을 바로 잡고 새 역사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교회는 계속 혼돈의 혼돈을 거듭해 왔습니다. 왜 혼돈의 혼돈을 거듭했을까요? ‘내 탓이요’에서 시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반성이 없이 새 역사는 시작되지 않는다’ 말은 우리 교회의 새 역사는 성도들의 영적인 각성과 회개 없이는 시작되지 않는다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영적인 각성과 회개가 없이 새 출발을 한다면 새 역사로 포장이 된 것일 뿐 여전히 우리는 이전의 크리스천의 삶을 되풀이 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역사도 남의 탓 안하는 것이 새 역사의 출발이라고 하는 한 역사학자의 이야기는 오늘 교회 성도들에게 큰 도전으로 닦아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가 아직 활동개시를 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의 새 역사를 출발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문제의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은 크리스천의 삶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범죄한 것은 우리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시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 값을 받으시므로 구원의 새 역사, 큰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교회의 새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교회가 당면하는 이런 저런 문제를 두고 서로 '당신 탓이요'라는 말은 삼갑시다. 당신 탓만 하다가 새 역사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새 역사로 포장한 서로의 주도권 싸움의 반복이 되고 말 것입니다.


새 역사를 시작합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가 어떤 문제가 있던지 이제부터 '당신 탓이오'로부터 '내 탓이오’ 로 우리의 삶이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 역사를 시작도 못하고 주저않고 말 것입니다.

1 view0 comments

Recent Posts

See All

아동 문학가 권순희 씨가 쓴 “시간 도둑”이라는 동시, “우리 집 내 방에 시간 도둑이 들었어요, 컴퓨터 게임 조금하는 눈 깜박할 사이, 아 세 시간이나 슬쩍 훔쳐갔지 뭐예요, 하지만 더 놀랍고 얄미운 거는요, 우리 할머니 방에 매일 매일 찾아와, 몇 시간 화살보다 빠르게 훔쳐 가는데, 할머니는 80 년 동안, 단 한 번도 잡지 못했대요.”는 시간의 소중함

헬렌 켈러(1880-1968)는 죽기 직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생은 정말 아름다웠다”. 육신이 멀쩡한 일반 사람들도 그런 고백을 하는 것을 쉽지가 않은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3 중 장애인이었던 그녀가 그런 고백을 한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놀랍게 합니다. 나의 삶은 아름다웠는가? 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니 아름다울 때도

어떤 부부가 외국여행을 떠나서 기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점잖게 앉아 있는데 부인은 계속 투덜대면서 기차가 더럽다느니 냄새가 난다느니 서비스가 좋지 않다느니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남편은 부인의 그런 태도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맞은편에도 어떤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가 불평하는 부인의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